《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와 최근 출간된 첫 소설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까지,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독보적인 문체로 문학의 경계를 흔들고 세상의 경계를 지우는 이문영 작가님의 〈루카스〉를 재공개합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곳에서 탈출한 애진은 10년 후 오늘, 시간을 건너 응급구조사가 됩니다. 소중한 친구들을 잃은 그는 다신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아 ‘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19구급대원들이 응급실로 스트레처카를 밀고 들어옵니다. 심정지 환자. 심정지의 골든 타임은 4분. 의사가 뛰고, 간호사가 뛰고, 기계들도 따라 뜁니다. 애진 역시 뜁니다. 뛰어야 다시 뛰게 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 살리는 소리로 가득한 곳, 응급실에선 사투가 일상입니다. 애진이 심폐소생술을 할 때마다 오른쪽 팔목에서 잊을 수 없는 그때의 감각이 펄떡입니다.
또 다른 ‘그날’, 그 거리 전체가 응급실이었습니다. 10년 전 그날의 장면이 겹칩니다. 안 돼. 애진의 심장에서 비명이 터집니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돼. 그곳을 탈출할 때 친구들에게 ‘그 말’을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오래도록 애진을 괴롭힙니다.
멈춘 심장을 살리는 일은 때로 다른 심장을 포기해야 하는 차가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했고, 어떤 사람은 구하지 못했지만, 구한 사람에게도, 구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기억돼야 할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심장이 멈췄다고 그들의 이야기까지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조되지 못한 몸들에겐 여전히 이야기가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상상이 필요합니다.
그 바다와 그 골목에서 망각 깊이 가라앉은 이야기들. 심장이 멈춘 이야기들 위로 두 손을 포개 올립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이야기가 다시 뛸 때까지 반복해서 압박합니다. 그날 친구에게 하지 못한 ‘그 말’을 심장에 담고, 응급구조사 애진이 뜁니다. 그 깊고 깜깜한 바다로, 응급구조사 애진이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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